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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가/소설

나인폭스 갬빗 _ 이윤하 _ 허블

(이미지 출처 : 알라딘)

어떠한 세계관을 정립한다는 것은 참으로 장엄하고 어려운 작업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금의 현실조차도 수많은 의견과 이견속에서 여러가지로 해석되고 뒤틀리기 마련이기에 창작의 영역에서 세계관이 탄생한다는 것은 이제와서 보면 정말 고난한 작업이 아닐까 합니다. 환상소설이 그러하고 SF가 그러하겠죠. 특히 저에게있어 SF라는 장르가 주는 즐거움이란 있을법하지만 아직은 구현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상상이 가장 두드러지는 부분이라고 말할 수 있겠네요. 개인적으로 SF를 선호한다고 생각은 하지만 소설로는 최근에 본 것이 아르테미스 정도였습니다. 2018년이었으니 4년이 다되어가나보네요. 일단 달기지까지 구현했다고 치고, 다른 환경과 논리 속에서 전개되는 이야기를 보는 즐거움이 있었지요. 아직 달 모양을 다양하게 보여주는 달자석도 잘 가지고 있습니다.

SF에 기대하는 부분이 어느정도 편협한 저의 취향에 비추어 보았을 때 이 책 '나인폭스 갬빗'은 사실 SF라고 부르기엔 너무 환상소설에 가까워보입니다. 무대가 우주공간이고 지금 세대를 뛰어넘은 것만 같은 기술들이 묘사되지만, 역법이라고 하는 큰 틀의 세계관은 환상소설에서 보여주는 소위 마법이라고 불리우는 체계와 접근하는 방식에 있어서는 유사해보이기도 했습니다. 판타지라고 불리우는 특정영역의 환상소설은 중세를 바탕으로 마법을 다루고 이 책 나인폭스 갬빗은 미래를 바탕으로 역법을 다루는 차이정도가 있어 보였네요. 역법이라는 장치가 설정상 수학을 바탕으로 연산한다고 하지만, 마법이라는 장치가 주문이라는 체계를 바탕으로 하는 것이나 다를바 없어보였습니다. 거기에 보다 높은 진입장벽이라고 해야할 만한 요소를 꼽아보자면 새로운 세계관의 기초 설명을 직접적 상황속에서 간접적으로 흘려보내는 방식으로 구성하는데 그 안에서 나열하는 구성요소가 너무 많아 프롤로그가 백페이지 가까지 되는 느낌을 들 수 있겠네요. 물론 이 책이 삼부작으로 호흡이 긴 소설에 속하고 그러기에 충분히 초반을 길게 가져가는 것이 타당해 보입니다. 하지만 요소를 집어준다기보다는 풀어놓는 설명의 홍수 속에서 굳이 김치를 유사하게 모사하는 것 같은 동양적 요소는 저에겐 풍랑속 암초가 이런 것인가 싶을 정도로 오히려 몰입을 방해하는 부분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새로운 세계관, 새로운 논리적 장치들이 구축되고 표현되는 것을 보는 것은 때로는 받아들이기 난해할 수 있지만 그것을 이해하고 즐기기 시작하면 또 상당한 즐거움으로 승화되곤 합니다. 이해의 과정이 난해해봐야 창조의 지난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작은 어려움이 있더라고 SF나 환상소설 등, 세상에 없는 것을 읽는 즐거움은 대체할 수 없는 색다름이 있지요. 어쩌면 이 책을 SF라는 장르에서 기대하고 원하던 부분을 찾으려는 마음이 저에게 더 어려움이었을 수 있겠습니다. 여튼 저는 백여장을 지나 프롤로그로 여겨지는 부분을 기점으로 잠시 책을 덮었습니다. 이 책이 SF로 안보일 때쯤 다시 펼쳐보려고 합니다.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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