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인생이 가장 어려운 것이라는 것을 우회적으로 표현하는 수많은 수단들이 있다. 일상은 소중한 것이며, 어떠한 수준의 생활을 유지 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겐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일상을 떠나, 평범하다라는 미묘하고 의미하려는 바와는 다르게 변화무쌍한 단어를 삶에 적용했을 때 그것은 비교의 기준이 되어 오히려 괴로움의 단초가 되기도 할 것이다.
크게 두 장으로 나뉘어진 본문 자체는 빠르고 쉽게 읽힌다. 여러가지 사건과 기억을 반추하는 자극과도 같은 장면들이 파편적으로 뿌려져있는 1장을 지나면, 마치 앨범을 쭉 넘겨보고 돌아서면 그 앨범속의 장면이 아른거리지만 명확하지 않은 듯한 느낌으로 1장의 내용을 슬쩍 슬쩍 기억하게하며 전개시키는 2장 속을 헤매인다. 1장의 내용이 명확하게 떠오르지 않더라도 그 옛날 "~로 가시요."과 같던 게임북처럼 다시 돌아가지 말고 기억에 의지해 일단 끝까지 가보자. 어쩌면 매수가 많지 않은 책이지만 천천히 띠엄띠엄읽는 것이 더 좋을 지도 모르겠다. 안개속을 헤치다가 안개에 휘말린 토니의 기분을 좀 더 공감할 수 있을테니.
토니. 비범하려 하고싶어하지만 행동하지 않고, 경외할 대상을 평생간직하고, 대범하려하지만 격분함에 실수하는 어디에나 있을 법한 행인2. 자신의 눈높이와 잣대로 과거를 반추하고 간직해 틈날 때 열어보고 진저리를 치고는 다시 뜯어보는 평범한 사람. 책속에서 그의 행동속에서 유치함을, 옹졸함을, 자기 합리화를 흘겨보다가도 그를 동정하고 이해하려는 순간, 토니속에서 나를 떼어내지 못함에 소스라치고 부끄러워진다. 좀더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책의 여운이 감동이라기보다는 착찹함으로 남아 자기전에 이불을 걷어차게 만들어줄 것만 같이 다 닦아내지 못한 잔변처럼 남는다. 찝찝하다. 나는 잘못한것이 없다고 외치면서도 내뱉지 못할 만큼 부끄러워진다. 옹졸했지만 그랬기에 덮어두었던 많은 것들이 봄눈 움트듯이 고개를 들고 스콜처럼 쏟아져 머리를 아프게한다.
추천하고 싶지만 추천하기 싫다. 재미있지만 부끄러울 것이기에.
p. 98 그리고 전보다 텅 빈 인생을 살게 되면서 수많은 아이디어가 떠올랐고, 그걸 '프로젝트'라고 명명했는데, 내딴엔 좀 더 그럴싸하게 들릴까 싶어서였는지도 모른다. 그것들 중 실현된 건 아무것도 없다. 뭐, 아무래도 좋다. 어쨌거나 지금 하는 이야기에선 아무 비중도 차지하지 않은 얘기들이니까.
p.100 나는 살아남았다. '그는 살아남아 이야기를 전했다.' 후세 사람들은 그렇게 말하지 않을까? 과거, 조 헌트 영감에게 내가 넉살좋게 단언한 것과 달리, 역사는 승자들의 거짓말이 아니다. 이제 나는 알고 있다. 역사는 살아남은 자, 대부분 승자도 패자도 아닌 이들의 회고에 더 가깝다는 것을.
p.144 그런데, 왜 우리는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유순해진다고 생각하는 걸까. 잘 살았다고 상을 주는 게 인생이란 것의 소관이 아니라고 한다면, 생이 저물어갈 때 우리에게 따뜻하고 기분좋은 감정을 느끼게 할 의무도 없는 것 아닌가. 생의 진화론적 목적 중에 향수라는 감정이 종사할 만한 부분이 과연 있기나 한걸까.
p.152 이게 말이 되는가.
p.173 내 식으로 말하면, 나는 삶의 현실에 안주했고, 삶의 불가항력에 복속했다. 만약 이렇다면 이렇게, 그렇다면 저렇게 하는 식으로 세월을 보냈다. 에이드리언 식으로 말하는 나는 삶을 포기했고, 삶을 시험해보는 것도 포기했고, 삶이 닥쳐오는 대로 받아들였다.
p.210 우리의 개인적 삶을 대입해야 할 때 그 말을 제대로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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