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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가/소설

영원의 아이 (상) _ 덴도 아라타 _ 북스피어 _ 초판 2쇄


  일단 두께가 상당하다. 집에서 자리잡고 읽기보다는 오가거나 카페에서 주로 읽는 나에게 작은 판형이지만 권당 700페이지에 가까운 무게감은 생각보다 거대한 것이어서, 함께 구입한 책들 중 구입시기를 상당히 지나서 집어든 책이 되었다. 겉 표지도 만족스럽지만 껍질을 벗겨내고 난 양장내피가 더욱 볼만하다. 반투명 표지였으면 더욱 좋았을듯 싶다. 은교의 보라인지 자주인지 모를 노린듯한 요상스런 색상에 비해 상하권 컬러톤도 마음에 들고 여튼 훌륭하다. (김홍민 대표님 책하고 놀자 잘듣고 있습니다.)

  미스터리라고하기에는 소재자체가 가지는 무게감이 있기에 사회고발적인 느낌으로서 먼저 다가온다. 아이들이 느끼는 무게감이 무뎌지지 않은 감성속에서 폭발하는 모양새가 구슬프기 그지없다. 상권은 전반적으로 세사람의 주인공과 그 바탕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사건의 시작을 담고있다. 과거의 비밀과 현재의 문제 두가지가 미스테리로서 기능하고있다고 할 수 있는데 600페이지쯤가면 아 이것때문에 미스테리인가보다 한다. 상권분량정도까지는 시점이 닿는 곳이 서사라기보다 묘사에 가까운 느낌이있다. 전반적으로 전지적 시점이라고 할수있겠지만 인물의 심리묘사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있어인지 자전적인 느낌을 주기도한다. 인물들의 아픔의 배경과 현재의 사건을 꼼꼼히 엮어내는 과정속에 있는 상권이기에 왜 이렇게 되었나 하는 그들의 관조속에서 사회와 사회 속 폭력성에 대한 내용이 주도적으로 다가오게된다. 상권 후반부로 들어서 본격적으로 미스테리적 느낌이 도드라지니 기대감으로 하권을 열어본다.

 본문 내용중 현대 법률이 판단하는 관점에 대한 곰씹어 볼만한 부분이 있어서 일부 가져와본다.

p.228 "가해자적 입장이라는 건 거칠게 말하자면 '저지른 건 어쩔 수 없잖아. 사과했으니까 언제까지나 투덜거리지 말고 잊고 살아가. '못잊는 건 그쪽 사정이지'라는 느낌일까."
"피해자적 입장은?"
"간단해, '당한 사람 입장이 돼 봐'."
"......그렇게 되어있지 않단 말이야?"
"되어 있는 것 같아?"
"포기할 수밖에 없는 건가? 상처를 입은 사람은 분노를 정당하게 드러내지도 못하는 거야?"
"사실 상대방의 형기가 몇 년 늘어난다고 해도, 피해자가 치유받는 건 아니잖아?"
"받은 상처가 어떻게 취급되느냐 하는 문제야. 얼마나 심한일을 당했는지, 어떤 모욕을 받았는지, 어느 정도나 화를 내도 괜찮은지...  상처를 입은 본인은 혼란스러워서 실제로는 잘 몰라. 남들은 잊으라고 하지. 상대는 집행 유예나 몇 년의 형, 때로는 기소 유예로 끝일지도 몰라. 정말로 보통 사람이라면 잊을 수 있을 정도의 상처일까... 큰 벌을 줄 필요도 없는 가벼운 죄라는 걸까... 하지만 사실 자신은 괴로워하고 있어. 제대로 숨도 쉬지 못하고, 행복과는 거리가 먼 생활을 하고 있지. 내가 이상한 걸까, 상처입은  내가 잘못일까... 그렇게 고민하는 걸, 너라면 알겠지? 스스로는 화내지 못하는 어린애나 스스로를 탓하고 마는 피해자 대신, 사회가  얼마나 진심으로 화내 주느냐... 그게 중요한 거야.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들이 화내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러지 못하는 가족도 있어. 가족이 가해자의 입자일 때도 있고...그렇기 때문에 우선 사회가 너는 잘못하지 않았다, 더 화내도 된다고 인정해 줌으로써 상처에서 회복 될 수 있는 경우도 있잖아?"

강한 어투로 말하던 료헤이가 말을 멈췄다. 쇼이치로가 작게 한숨을 쉰 것 같았다.

"그렇다면 벌 자체에 대한 새로운 존재 방식을 생각할 필요가 있겠지." "법 개정이라는 건가?"
"그게 아니야. 시점의 전환이랄까... 지금의 가해자적 시점이 바뀌지 않는 한, 개정을 해 봐야 현재 시스템의 연장에 지나지 않을 거야. 단순한 벌칙 강화, 적용대상의 확대 같은걸로 끝날테지. '이년이나 형기를 늘렸으니까 이제 됐지? 잊어버려' 라는거야...네 말처럼 정말로 필요한 게 피해자나 피해자 가족의 구제, 회복하기 위한 격려라면... 그 구제를 가해자에게 어떻게 부담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가 생기게 되잖아. 피해자가 회복하는 데 필요한 도움에, 가해자를 어떻게 참가시키는 게 효과적일지... 그걸 구체적으로 생각해 나가야 하지 않을까."

(중략)

"결국은 전문가의 문제가 아니야. 재판관이 자신의 감정에 의지해 판단한다고 해도 그건 어디까지나 한 시민의 가치관에 비춘 감정이니까...사회 전체의 시점이 '당한 쪽'에서 바라보는 시점으로 바뀌었을 때, 비로소 판결이나 벌칙도 바뀌지 않을까...하긴 사회가 그런 형태로 바뀐다면 지금까지와 같은 경제적인 발전은 바랄 수 없게 되겠지. 사회는 '당한 쪽'을 못 본 척 희생시켜 발전을 꾀하기도 했으니까... 사회가 변하면 제일 먼저 우리 같은 사람들의 일거리가 없어질 거야. 그렇게 된다고 해도 별로 곤란할 것도 없지만."


너무 많이 가져온 듯한 기분도 있지만 요즘처럼 피해자에게 잊으라고 강요하는 목소리를 크게 낼 수있을 정도로 뻔뻔한 사람들이 만연한 시점에서, '내 일 아니니까' 라는 얄팍한 가면뒤에 숨어 슬며시 가해자의 그늘안으로 도피하려는 감정들에게 권해주고 싶은 단락이다. '아픔의 공감'이라는 피로를 잘라내 버리려는 그들이 잊지 말아야할 것이 있다면, 결국 어떤 사건이 일어났을때 구분되는 무리는 가해자와 피해자 두 집단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주위에는 아직 어느 한편으로 움직이지 않은, 사회라고 불리우는 무수한 중간자들이 있다. 가해자의 그늘에 숨어 그저 피해자 집단이 아니려고 노력해봐야, 가해자의 그늘은 그들의 표정을 가리운채 앞으로 뻗어있고, 그들을 등지고 서서 '이번에는' 피해자가 아니었음에 짧은 안도를 내쉬는 당신의 뒤통수를 지긋이 바라보고 있다.


영원의 아이 (상/ 양장)
국내도서
저자 : 덴도 아라타(天童 荒太) / 김소연역
출판 : 북스피어 2010.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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