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섬주섬 담아놓은 책을 구입하는 차에 빨간책방 소개로 더 찔러넣은 책으로,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한 도드라진 여자와 그와 유사한 파편을 담고있는 주위사람들에 관한 350쪽 가량의 장편소설이다.
종이달이라는 제목은 여러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겠다. 간혹 본문중에 묘사되는 위태로운 달의 모습일 수도 있겠으며, 진짜 달이 가지는 감정적인 면만을 복사한 가짜 달일수도 있다. 혹은 등장인물들이 전체적으로 가지고있는 금전적인 문제를 보자니 화폐라는 가치를 잃고 일탈의 도구로 폭주하는 종이돈으로 보이기도한다. 책 말미 옮긴이의 글 초반을보면 일본에서 종이달이라는 유행이 있었다고 하는데 내용은 직접 사서 읽어보시라.
시작부터 횡령사건은 이미 터져있는 상황이며, 리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그녀가 직접 겪은 이야기와 함께 그녀를 직간접적으로 겪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어우러져 자신의 중심을 잡지못하고 휘둘려 불륜과 횡령에 빠져가는 삶을 다양한 각도에서 묘사하고 있다.
누구나 겪었을 법한, 당연한 줄 알았던 것들에 대한 결핍이 그녀 자체를 흔들면서 변화 혹은 일탈하게하고 결국엔 개미지옥같은 통제불능의 자신안에 빠져 구원아닌 탈출을 바라는 과정을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다. 또한 자신의 기억속에서 리카에 대한 몇가지를 반추하다가 무너져내리는 자신의 일상속에서 리카와도 같은 조각들을 발견하는 주변인들의 결말을 안타까울정도로 전해주고 있는 책이라고 하겠다.
한줄기 탈출구와도 같은 달빛을 발견하고 그 하나에 매달려 현실을 미화하고 개조하여 자신이 원하는 모양으로 재단하고는 부서짐을 향할 수 밖에 없는 결말을 알고있으면서도 맴도는 달콤함에 엑셀에서 발을 떼지 못하고 질주하는 리카의 모습이 피라미드를 소재로한 '비행운'속의 '서른'과 닿는 느낌도 든다.
몇번이나 여러줄을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고 있지만 명확히 표현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이있다. 파편적으로 늘어보자면, 리카에대한 연민. 그녀와 조금은 다른 삶의 상황에 대한 다행스러움 혹은 우월감. 나의 이야기가 아님에 대한 안도.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지만 너무도 생생한 묘사이기에 리카와 나를 점점 동일선상에 놓고 저울질함에 표현이 떠돌고 내용이 잘 정리되지 않는 기분이다.
책에 대한 감상문이 아니라 자화상을 그리게 되는 느낌이라고 해야할까? 주인공을 묘사하고, 주변인이 주인공을 바라보면서 다시 자신을 반추하는 전체적인 얼개때문인지 등장인물들이 나를 바라보는 듯하여 만화경속에 갇혀 무수한 내가 나를 바라보는 기분에 정수리가 뾰족하니 섬짓하다.
p.145 고타는 언제나 리카보다 먼저 역에 와 있다가, 리카를 발견하자마자 항상 빙그레 웃었다. 만든 미소가 아니라, 저절로 쏟아지는 미소여서 리카는 볼 때마다 놀랐다.
p.156 역의 플랫폼에는 사람이 없었다. 리카는 긴 의자에 앚아 전철을 기다렸다. 파르스름한 하늘에 하얀 달이 남아있었다. 갑자기 리카는 손가락 끝까지 가득 차오르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만족감이라기보다는 만능감에 가까웠다. 어디로든 가려고 생각한 곳으로 갈 수 있고, 어떻게든 하려고 생각한 것을 할 수 있다. 자유라는 것을 처음으로 손에 넣은듯한 기분이었다. 리카는 죄책감도 불안감도 전쳐 느끼지 않고, 인적 없는 플랫 폼에서 자신도 설명할 수 없는 그 만능감의 쾌락에 잠겼다.
p.261 구체적으로 누구에게 언제 사용할 거라는 목적이 있는 건 아니었다. 그저 복사를 되풀이하여 어긋나지 않도록 신중하게 뒷면도 복사하고, 글씨를 입력하는 행위를 계속하고 있으면 불안 비슷한 술렁거림이 안정되었다.
p.281 고타. 그 이름이 기포처럼 가슴에 보글거린다. 고타. 고타.
p.297 하지만 나는 무엇을 사달라든가 해달라는 말 한 번도 한 적 없어요. 그말에 리카는 자신의 어린 시절이 문득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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