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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가/비소설

보통이 뭔데? _ 쿠라모토 토모아키 _ 한울림스페셜 _ 1판4쇄

(이미지출처 : 알라딘)

아무래도 직업이 직업이다보니 장애인등편의법이나 유니버셜디자인, 배리어프리 인증 등 단어도 이것저것 많이 접하게되고 법령이나 가이드도 자주 보게됩니다. 친환경 관련 기준만큼이나 장애인, 이동약자 등에 관한 기준도 매년 강화되고 세밀해지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네요. 법령이나 기준이 강화되는 것만큼 건축이나 시설물이 개비되거나 신축되는 비율이 크지 않기 때문에 생활환경에서 이런 변화를 체험할 만한 곳은 지하철이 정도가 아니면 많지는 않을겁니다.

과거에 비하여 어느정도 법령이 정비되고 사회적 자원이 좀더 적극적으로 집중되는 것처럼 보이는 요즘이지만, 상상만으로는 쉽게 닿지 못하는 인식의 간극은 언제나 있어왔고 앞으로도 있을 겁니다. 단어에 익숙하고 법령에 자주 스친다고 하여 그 삶을 안다고 할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비장애인이란 그저 운이 좋아서 아직 장애인이라는 분류로 나누어지지 않는 그룹일 뿐이며, 누가 언제 어떤 사건을 만나 장애인의 카테고리에 속하게 될지 모르는 일입니다. 그렇게 때문에 더욱 적극적으로 사회적 공감을 나누려 애써야하고 자본을 투입해야하며 환경을 정비해야할 일이지요. 저에게는 업무의 영역이기도 하기에 더욱 되뇌이며 최대한 적용하려고 애쓰는 나날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와닿지 않는 수도 있는 부분을 비교적 편하게 이야기하는 책이 있어 남겨보려합니다.

*나름대로 반복된 고민을 통하여 생각을 정리려고 하지만, 부족한 부분이 많은 개체이기에 의도와는 미묘하게 다른 부분이 있고 표현이 거칠기 그지없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물론 의도가 방향을 잃을때도 있겠지만요. 이하 글에 혹시 사려깊지 못한 표현이나 잘못된 문장이 있더라도 접하신 분들의 너른 이해를 부탁드립니다.*

장애인을 약자가 아닌 동등한 사람으로 봐달라는 말은 쉽게 들리지만 공감하기 어려운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나의 작은 선의가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것이라는 생각은 쉽게 와닿지 않기 때문이겠죠. 우리 주변에서 사소한 양보, 매너, 에티켓, 친절함들이 대상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없는 관계에서도 일상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일 것입니다. 비슷한 그룹의 행위자들간에 암묵적으로 학습하여 공유하고 있는 행동들이기때문에 일상 속 작은 접점에서는 더 편하게 이루어는 것이겠죠. 그렇다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라고하는 다른 그룹사이에서는 어떻게 작동하게 될까요?

장애인은 비장애인의 세상에서 불편함을 느끼는 개체일 것입니다. 약자라는 말은 너무 범위가 넓어보이기에 고민하기 쉽지않습니다. 장애인은 도움과 보호가 필요한 대상이기에 나의 작은 친절함이 그에게는 필요일 것이라는 생각이 어쩌면 동정과의 경계를 잘못잡게 만드는 기준은 아니었을까요? 물론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사이에는 우연이라는 얄팍한 것으로 이루어진 비정형적 경계가 있어보입니다. 그 찰나적 전환의 즉각성에 비하여 대단한 거리감을 가지고 있어 보이기도하죠. 배리어프리라는 기치아래 이루어지는 사회적 비용의 투입과 홍보들은 도움일까요? 아마도 그럴 것입니다. 하지만 그 동력은 이제 우리 사회의 수준이라면 할 수 있으다는 여유와 친절, 그리고 다음은 내 차례일 수 있다는 막연한 두려움 어딘가 일지도 모릅니다.

나의 친절에 대상이 불편함 혹은 더 나아가 불쾌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 원인은 나에게있을수도 있고 대상에게 있을수도 있으며 어쩌면 그 행위가 이루어진 공간적 시간적 상황에 있을지도 모르겠지요. 이 책에서 화자는 경도장애인과 중도장애인의 정의를 사례를 통하여 이야기하면서 경도와 중도라는 단어가 가지는 의미가 단지 불편함의 양적 비교가 아니라고 이야기 합니다. 지팡이를 하고 있지 않다고해서 지팡이가 필요한 사람보다 지하철 티켓을 쉽게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알기전엔 깨닿기 어려운 부분일 겁니다.

다시 약자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와 나름의 생각을 거칠게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지팡이를 필수적으로 사용해야하는 상황의 시각장애인도 제대로 된 환경이 조성만 되어있다면 도움없이 필수적인 부분에 있어 혼자 해결이 가능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모르는 비장애인 중 선의에 이끌린 사람이 그에게 다가가 문제일수도 있는 것을 해결하려 시도하였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그리고 오늘 하루만 본인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참견을 몇차례나 받아온 장애인은 퉁명스럽거나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며 '됐으니 가시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생각해보죠.

비장애인이 경도 장애와 중도 장애인를 즉각적으로 구분해내어 그 차이에 걸맞는 적절한 대응을 보이기는 쉽지 않을겁니다. 친절이라고 해봐야 가벼운 의도의 전달일 뿐이었기에 축적된 장애인의 의도치 않은 날선 반응이 오히려 불쾌함으로 돌아올지도 모릅니다. 좋은 의도일 뿐인데 이렇게 불편해야 하냐는 생각이 떠오를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그 전에 장애인이 그 친절어린 참견을 원하는가에 대한 판단은 시도할 수 있을겁니다. 질문이라는 보통의 방법으로 말이죠. 나의 의도가 참견일지 필요일지에 대하여 행동하기전에 물어보는 것이 선행된다면 서로에게 좋은 순간이 될 가능성이 높아지지 않을까요? 스티비 원더와 김연아 사이처럼 말이에요.

이 책은 그러한 부분에 대한 너른 이해를 부탁하고 있습니다.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장애유무가 아니더라도 작은 다툼은 끊임없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 이유는 셀수없이 많고 개개인의 경험 영역 밖에서 수도없이 발생하게되죠. 장애인과 비장애인간의 존중도 그렇게 바라볼 수는 없을까요? 장애유무라는 것을 사람과 사람사이에 놓여진 많은 상황중의 하나로 받아들이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문제일까요. 똑 떨어지는 답을 찾기보다는 같은 질문을 고민하고 싶으신 분에게 권하기 좋은 책으로 보입니다. 총총.

* 근본적으로는 다르지만 나와 상대의 상황에 대한 생각을 불러오는 느낌을 주는 글이있어 붙입니다. 이분의 책도 곧 읽고 이야기 남길 수 있도록하겠습니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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