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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가/소설

고래 _ 천명관 _ 문학동네 _ 1판 31쇄



민화 혹은 설화 혹은 우리네 흘러온 시간의 사실과 판타지의 미묘한 부분을 달리는 거침없는 속도에 네덧번 책을 펴고 한번에 달려버려 오히려 조금 아쉬웠던 '고래'라는 소설. 장르문학과 순수문학의 경계를 넘나들며 생각지도 못했던 소재를 이리저리 끌어다 붙여도 생생하게 현실감을 불어넣는 작가의 손에 놀아나는 기분이 매우 흡족했다. 백문이 불여일견 어서 펼치고 빠르게 닫으시라.


p.49  그리고 바다를 보았다. 갑자기 세상이 모두 끝나고 눈앞엔 아득한 고요가 펼쳐져 있었다. 곧 울음이 쏟아질 것처럼 가슴이 울렁거렸다. 그녀는 옆에 있는 바위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 그것은 자신이 살던 집보다 족히 서너 배는 됨직한 거대한 물고기였다. 물고기는 바다 한복판에서 불쑥 솓아올라 등에서 힘차게 물을 뿜어올렸다. ... 금복은 믿을 수 없는 거대한 생명체의 출현에 압도되어 그저 입을 딱 벌린 채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p.222  - 주여, 제 뜻대로 하지 마시고 무조건 당신 뜻대로만 하소서. 뭐가 됐든.

  금복의 바람기는 그렇게 아이러니하게도 하느님의 복음을 전파하는 목사와의 관계로 시작되었고, 그 이듬해 목사는 소원대로 평대 한복판에 번듯한 예배당을 세울 수 있었다. 그것은 헌금의 법칙이었다.


p.240  난장판의 된 굿판의 묘사와 만신의 변화에 대한 서술.


p.255  그녀는 풀밭 위를 거닐며 식물들의 비밀스런 생장이 이루어지는 밤의 냄새를 맡았다. 그녀는 곤히 잠들어 있는 너구리의 숨소리와 들쥐를 물고 나무를 기어오르는 구렁이의 차가운 비린내, 굴을 파는 땅강아지의 부지런한 발놀림, 그리고 자신의 몸 속에서 이루어지는 은밀한 변화를 감지했다.


p.310  왜냐하면 이야기란 바로 부조리한 인생에 대한 탐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것을 설명한다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뭔가 불순한 의도를 가진 자들만이 세상을 쉽게 설명하려고 한다. 그들은 한 줄 또는 두 줄로 세상을 정의하고자 한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명제가 그런 것이다.

   - 법앞에서 만인은 평등하다. -


p.322  몇 년 뒤, 한 인권단체의 폭로에 의해 교도소장의 과도한 인권침해 사례가 세상에 알려지자 그 사실이 장군에게 보고된 적이 있었다. 이때, 장군은 껄껄 웃으며 다음과 같은 말로 그를 옹호했다.

  - 그 친군 뭐든지 너무 열심히 하는 게 문제야. 하지만 그래서 나쁠건 없지. 지금은 뭐가 됐든 넘치는 게 좋거든.

  교도소장은 정년퇴임을 할 때까지 꾸준히 소각과 매립을 계속했고 여든두 살의 나이로 세상을 뜰 때까지 국가에서 연금이 지급되었다.


p.377  그러다 마침내 온 세상이 어둠으로 가득 찼다. 그리고 어둠 속에 문득 새로운 빛과 이미지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춘희로서는 처음 겪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그녀는 점점 더 많은 환상을 보았다. 과거의 장면들은 아무 때나 꺼내볼 수 있는 도서관의 책들처럼 바로 앞에 나란히 진열되어있었다. 그 책들은 그녀를 과거로 안내할 타임머신이었다.


매우 더 많지만. 여기까지. 직접 보시라.


고래 - 제10회 문학동네소설상
국내도서
저자 : 천명관
출판 : 문학동네 2004.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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